이상하 358

<세속화: '저기'와 '여기'> 후기 2. 세속화 담론의 성격 1

* 이 글은 원고 의 후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체 원고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글의 성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살펴볼 첫 번째 물음은 다음이다. •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사회 속에 확대되기를 바라는 무종교인들은 가상의 역사로 남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위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부정적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현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특징들인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 혹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 ‘감정과는 구분되는 추론 및 추상화 과정 등의 합리적 능력이 과학과 기술의 결합을 촉진시켰다는 것’,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 ‘나라 간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것’ 등이 나타..

<세속화: '저기'와 '여기'> 후기 1. 역사적 과정들의 비동질성

* 이 글은 원고 의 후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체 원고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글의 성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전에 올린 것에는 오류가 있어 수정한 것을 다시 올린다. 이 작업의 성격은 ‘세속화에 대한 담론을 생성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 세속화 담론의 성격은 한 편으로는 역사적이며, 또 한 편으로는 개인적이다. 이러한 세속화 담론의 성격은 다음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 (i)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사회 역사는 개인들의 거래 관계 및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구조적 연결 방식’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들이다. 그러한 구조적 연결 방식을 구성하는 요인들로는 ‘세계를 이해하는 특정 방식’, ‘관습 및 제도’, ‘인공물들을 바탕으로 한 물질적 기반’, ‘계층들 간 관계’, 등을 들 수..

인간과 동물 2. 받아 들이기 힘든 관점, 철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필요성 암시(수정)

모두가 합의할 수 있을 정도로 ‘관점’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에 따라 ‘관점’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해할 때, 그것은 이미 ‘세계’를 함축하고 있다. ‘관점’은 경우에 따라서는 ‘비교를 바탕으로 한 어떤 관계에 대한 입장’을 뜻하..

시각 경험에 바탕을 둔 당연한 믿음들과 증거들

* 다음은 199년도에 발표한 논문을 1차 수정한 것이다. 너무 오래 되어 사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원고 작성을 위해 별도로 작성한 것은 올리지 않는다. 왜 옛날 논문을 다시 보게 되었는가? 개인적으로 철학의 궁국적 출발점은 일상경험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가 모든 형이상학을 제한하는 뿌리라 믿는다. 수입을 줄이고 공부량을 다시 늘리면서 최근 연구 작업들을 본 결과, 일상적 대상은 아예 '실재의 그림자'처럼 굳어지는 판국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분석철학 형이상학 진영의 양상 논리 존재론, 지속론, 편차론 등등을 보면 일상생활에서 친숙한 대상들은 그림자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동으로서 후설이나 하이데거가 마치 일상성을 구해낼 ..

코르스의 상징성

메르스 확산 사태로 '코르스', 즉 '한국판 메르스'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른 나라와 달리 메르스 전파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확산 범위도 예상보다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1. 메르스 환자 1인당 전파력은 0.8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의 경우 최대 40명에 이른다. 2. 메르스 전염 가능 거리 및 시간은 확진 환자를 중심으로 반경 2m, 1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점은 우리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환자 발생 범위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3. 메르스 감염자는 보통 38도 이상의 고열 증상을 나타낸다. 우리의 경우, 미열 의심 환자도 확진 환자로 판명되는 경우가 나왔다. 4. 메르스 환자 중 고위험군은 고령 환자들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 30대 이하 확진 환자도 17%..

쿠자누스의 만유내재론(N. Cusa's Panentheism)

* 쿠자누스의 만유내재론(Panentheism) 신은 자연이다(deus siva natrura). 이 문구를 철학적 탐구 대상으로 삼은 근대 철학자를 들라면, 스피노자(B. Spinoza)를 빼먹을 수 없다. 자연 자체가 신이라면, 그리고 신이 창조주라면, 신은 창조 순간에 자연을 서식지로 삼은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현상은 유일한 궁극적 실체인 신의 물질적 속성과 정신적 속성의 두 양상에 기인한 것일 뿐이다. 이렇게 자연과 신을 일치시는 사고방식을 기독교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난제가 있다. 창조주로서 신의 속성으로 간주된 무한성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신의 모든 피조물이 무한성에 대비된 유한한 것이라면, 어떻게 신의 무한성이 유한한 것들 속에 반영될 수 있을까? 자연과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