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 86

자연 신학 3. 페일리의 자연 신학과 창조 과학

(3) 페일리의 자연 신학과 창조 과학 성서의 기록을 기준으로 과학적 발견을 평가하는 창조 과학의 핵심은 다음 네 가지 논제로 구성된다. SC1. 지구의 나이는 진화론자나 지질학자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SC2.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특별한 존재이다. SC3. 진화론의 화석 연대기는 부정확한 것이다. SC4. 창조 과학은 학교 과학 시간에서 가르쳐져야 한다. 창조 과학 진영은 자연 신학 전통을 자신들의 지적 뿌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페일리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첫째, 페일리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규칙적인 현상이나 질서가 신의 섭리를 반영한다고 믿었다. 그는 성서의 기록 자체를 신 존재에 대한 직접적 증거로 보지 않았다. 그는 성서에 인간의 관점이 뒤섞였을 ..

자연 신학 2. 다윈 진화론과의 양립 불가능성

(2) 다윈 진화론과의 양립 불가능성 페일리의 자연 신학과 다윈의 진화론의 양립 불가능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 한 측면은 과학과 신학의 관계이며, 그 다른 측면은 자연의 역사에 대한 이해 방식의 차이이다. 페일리는 진화론이 출현하기 이전 시대의 사람이다. 그는 전통적 지적 설계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기 때문에, 보일처럼 과학을 신학의 하부에 위치시켰다. 즉, 과학적 발견은 자연에 깃든 신의 섭리를 밝혀주는 수단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페일리는 지적 설계자 가설 자체가 ‘과학적 가설’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검증 혹은 반증 불가능한 신 존재 가정과 과학적 가설을 구분하는 한, 과학과 신학의 관계가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재확인 및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과의 연..

자연 신학 1. 페일리의 논증 방식

자연 신학 (1) 페일리의 논증 방식 페일리(W. Paley)는 19세기 자연 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연 신학은 자연 속에서 신의 섭리를 찾아보려는 기독교의 전통에 서있다. 자연 신학 전통에서 신 존재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법’으로 여겨질 수 없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법’에 따르면, 신 존재에 대한 의심은 논리적 모순이나 터무니없는 결과로 귀결된다. 따라서 신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자연 신학의 대부로 불리는 17세기의 보일은 과학적 발견들 자체가 신 존재를 반영해준다고 여겼다. 자연 신학의 논증은 과학을 통해 신의 섭리가 자연에 깃들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자연에 깃든 신의 섭리를 옹호하는 방식은 시기별 과학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페일리의 자연 신..

이념 전쟁 2.3. 자연 선택 가설을 둘러싼 독단 3. 종교의 과학화

(2) 자연 선택 가설을 둘러싼 독단 3. 종교의 과학화 지적 설계자 가설로 무장한 세력은 자연 선택 가설의 설명 한계를 강조한다. 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지적 설계자 가설도 생물학의 통합 원리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지적 설계자 가설도 과학적 가설로 여겨져야 한다. 그런데 지적 설계자 가설을 검증 및 반증 가능한 과학적 가설로 볼 수는 없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들어 이러한 반박에 항변한다. • 자연 선택 가설이 생물학의 유일한 통합 원리라는 주장은 증거를 결여한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우연적인 것에만 근거하여 생물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념적 독단에 불과하다. 필연적인 것 없이는 생물 현상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필연적인 것을 보장해주..

이념 전쟁 2.2. 자연 선택 가설을 둘러싼 독단 2. 자연 선택 가설의 한계

(2) 자연 선택 가설을 둘러싼 독단 2. 자연 선택 가설의 한계 개체군에 분포된 표현형의 차이와 생식적 적합성 사이의 상관관계는 유전자의 빈도 차이로 측정 가능하다. 이때 해당 측정량은 표현형의 차이 및 개체수 증가라는 관찰에 대응된 것이다. 그러한 측정량은 특정 조건 아래 반복적으로 재생산 가능하지는 않다. 따라서 자연 선택 가설은 강한 예측성을 가진 분석적 도구로 사용되기 힘들다. 이에 대한 이유로 진화의 선택압으로 여겨지는 환경 요인들을 조작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관찰 가능한 표현형의 차원이 아니라 분자 및 거시 차원의 진화 과정도 자연 선택만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진화를 분자 차원에서 접근할 때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를 포함한 미생물의 세계를 우선적으로 ..

이념 전쟁 2.1. 자연 선택 가설을 둘러싼 독단 1. 이념화된 생물학

(2) 자연 선택 가설을 둘러싼 독단 1. 이념화된 생물학 자연 선택 가설로 무장한 세력과 지적 설계자 가설로 무장한 세력의 논쟁에는 ‘지적 설계자 가설에 관한 독단’이 깔려 있음을 보았다. ‘자연 선택 가설에 관한 독단’은 ‘자연 선택 가설의 설명 한계’에 대한 인정 유무에 있지 않다. 그것은 자연 선택 가설로 진화를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방식이 ‘독단적’이라는 데 있다. 여기서 ‘독단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위해, ‘자연 선택 가설에 관한 독단’을 먼저 규정하자. • 자연 선택 가설은 진화를 설명하는 데 충분한가? 자연 선택 가설로 무장한 세력과 지적 설계자 가설로 무장한 세력이 이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독단적이다. ‘독단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비판적 사고의 결..

이념 전쟁 1. 지적 설계자 가설에 관한 독단

이념 전쟁 성서의 기록을 기준으로 과학적 발견을 평가하는 창조 과학 진영은 기독교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성서를 은유 체계로 보고 자연에서 신의 섭리를 찾아보겠다는 전통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창조 과학 진영은 그러한 전통에 서있는 자연 신학을 마치 자신들의 지적 뿌리인 것처럼 주장한다. 또 창조 과학 진영은 기독교의 참다운 사회적 기능을 위해 학생들에게 진화론의 허구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자연 선택 가설로 무장한 세력’과 ‘지적 설계자 가설로 무장한 세력’ 사이에 벌어진 이념 논쟁이 이 땅에 수입되었다. ‘과학 대 종교의 충돌’ 혹은 ‘합리적인 것 대 비합리적인 것의 대립’으로 그 논쟁을 과장하는 분위가 이 땅에 형성되었다. 자연 선택 가설로 무장한 세력은 ‘자연 선택’을 ..

점들의 간격과 위치 4.3.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3. 무신론, 무종교인의 관점

(3)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3. 무신론, 무종교인의 관점 복잡성 증가를 신의 섭리로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창조주로 가정된 신 개념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의 이러한 결론은 신 존재를 확실하게 증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신론을 논리적으로 배제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라마르크가 무신론을 주장했어도, 진화가 복잡성의 증가 과정이라는 그의 관점은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는다. 만약 라마르크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이었다면, 그 관점에 근거해 어떤 논증을 펼쳤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증은 다음과 같다. • 복잡성 증가 과정은 우주의 특정 부분들에 국한된 자연의 역사와 관련된다. • 복잡성 증가 과정이 전일적 우주의 역사 속에 귀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 태초를 가정하는 우..

점들의 간격과 위치 4.2.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2. 두 가지 신 존재 논증

(4)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2. 두 가지 신 존재 논증 진화가 복잡성 증가의 과정이라는 라마르크의 주장에서 복잡성의 증가는 신의 설계도가 전개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없다. 또한 라마르크가 창조와 창조주를 동일시하는 전통에 서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복잡성 증가 개념을 ‘신의 자기 구현 과정’과 연관시킬 수 없다. 이때 다음의 논증이 성립한다. • 자연에서 신의 섭리를 찾아보려는 전통이 있다. • 그 전통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그 하나는 신에 의해 예정된 우주의 설계 방식을 신의 섭리와 연관시키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창조와 창조주를 동일시함으로써, 신의 섭리를 우주의 진화 목적과 연관시키는 관점이다. • 라마르크는 두 가지 관점 모두를 부정하였기 때문에, 그는 자연에서 신을 섭리를 찾아..

점들의 간격과 위치 4.1.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1

(4)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1 신을 믿는 사람이 자연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라마르크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라마르크의 입장을 받아들일 때 그는 과학과 양립 가능한 창조설을 ‘강한 자율적 우주 창조설’로 보았다. 라마르크에게 신은 우주를 설계한 존재도, 생명의 씨앗들을 우주에 심어 놓은 존재도 아니다. 그에게 신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목적인도, 작용인도 아니다. 그의 신은 물질계에서 생물계로의 전이 및 생물계의 진화에 대한 가능성만 우주에 마련해준 존재이다. 즉, 물질계에서 생물계로의 전이 및 생물계의 진화는 우주의 자기 조직화 과정의 산물인 까닭에 신에 의해 예정된 조화의 전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력과 같은 물질의 필연적 속성의 제한 속에 대상들의 우연적인 연결망이 형성되..